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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일기

『식케이, pH-1, 박재범 - iffy (Prod. GroovyRoom)』

by ldj0214 2024. 6. 14.

2024. 06. 14. 금
오늘의 곡은 하이어 뮤직의 iffy.
 
어제 열린 생애 첫 DJ 공연을 성황리에 무사히 마쳤다.
자고로 DJ라 함은 관객들의 분위기를 보면서 플레이할 곡을 즉흥으로 선정하거나,
너무 루즈해진다 싶으면 바로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센스가 필요하지만,
아마추어인 나로선 경험이 적다 보니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연습에만 몰두했다.
오프닝은 1시간, 엔딩은 30분짜리로 셋 리스트를 짜고
집에서 혼자 계속해서 돌려가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만 신경 썼다.
 
그렇게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공연할 가게에 입장해
간단한 장비 세팅이랑 리허설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체됐다.
나는 1시간짜리 오프닝을 준비했는데 사정상 30분밖에 플레이할 수 없었다.
곡을 마무리할 때도 그냥 턱 꺼버리면 분위기가 무너지기 때문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끝내야 했지만,
아마추어인 나로선 곡을 중간에 끝내는 방법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짱구를 굴려가며 도출한 결과값이 내가 즐겨보던 DJ 유튜브를 따라 하는 거였지만,
연습 하지도 않은 퍼포먼스를 하려니까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의구심이 앞섰다.
곡은 흐르고, 시간은 지나가고 있으니 어떻게든 끝내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없었던 기억까지 끄집어내 시도한 결과,
조금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어찌저찌 플레이를 끝내고 본 공연을 하는 동안 MR 틀어주면서 음향 세팅하다 보니 어느새 엔딩이었다.
내가 짠 엔딩은 30분짜리였지만 30분이 다 돼가는데 가게 손님들은 나갈 생각을 안 하였다.
손님들이 있는데 곡을 중단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 오프닝과는 반대로 억지로 늘려야 했는데,
내 노트북에 남아있던 곡들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배치했지만, 문제는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길까 였다.
앞 30분은 죽도록 연습했기에 눈감고도 다음 곡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게 가능하였지만,
뒤 30분은 연습은커녕 자주 듣지도 않은 곡들투성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곡은 흐르고, 시간은 지나가고 있으니 어떻게든 늘려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음 곡을 미리 들어가며 진땀의 세팅을 한 결과,
조금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정말로 계획된 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공연이였지만,
계획을 하고 성공했을 때의 전율보다 몇 배는 짜릿했다.
재즈도 그렇듯 즉흥연주를 하려면 기본기가 무척 충실해야 하는데,
내가 그것을 증명한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짜릿했던 것 같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다.
하지만 계획대로 술술 풀린다면 과연 사는 재미가 있을까.
이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는 말고)